RM 014
RM 014는 리차드 밀이 항해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뎠음을 알리는 타임피스다. 기존의 F1 레이싱에서 더 나아가, 바다에서 영감을 얻은 설계와 디자인을 반영했다. 이 모델은 2006년 이탈리아 라스페치아에서 요트 제조사 페리니 나비(Perini Navi)가 건조한 전설적인 요트 ‘말티즈 팔콘(Maltese Falcon)’에서 착안했다. 첨단 항해 기술과 독창적인 돛 시스템을 갖춘 이 삼각 범선은, 디자이너 켄 프레이복(Ken Freivokh)의 손길을 거쳐 우아함과 기술적 완성도를 모두 갖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말티즈 팔콘은 ‘팔콘 리그(Falcon Rig)’로 알려진 혁신적인 항해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며, 요트 업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팔콘 리그는 파비오 페리니(Fabio Perini)가 개발한 시스템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돛을 마스트 내부에 감아 넣는 마스트 펄링(mast furling) 기술을 컴퓨터로 자동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의 사각 돛을 사용한 쾌속 선박을 현대적인 기술로 재해석한 이 시스템은 카본 섬유 구조와 자동화된 마스트 펄링을 결합해 전장 88미터의 요트가 무려 25노트의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말티즈 팔콘은 선원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도 단 한 사람의 조작만으로 대형 요트를 운항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항해 기술의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 페리니 나비가 선보인 이 획기적인 혁신과 정교한 기술력은 리차드 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RM 014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캘리버 RM014
시, 분 표시, 기능 셀렉터, 파워 리저브 및 토크 인디케이터가 탑재된 매뉴얼 와인딩 투르비용 무브먼트
리차드 밀은 완벽을 향한 집념으로 연구개발팀을 페리니 나비의 조선소로 보내, 건조 중이던 요트를 직접 조사하게 했다. 팀은 선박의 세밀한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사진으로 기록하며, 디자인적 특징을 철저히 분석해 RM 014의 제작 과정에 반영했다.
말티즈 팔콘과 같은 하이엔드 요트는 선체부터 내부 장비까지 스테인리스 스틸 합금을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RM 014 역시 이와 동일하게 브랜드 최초로 배럴과 투르비용 브리지, 그리고 몇몇 주요 부품에 블랙 폴리싱 처리한 스틸 소재를 적용했다. 흥미롭게도, 블랙 폴리싱은 평평한 표면에도 적용하기 까다로운 기술인데, 리차드 밀은 이를 곡면 브리지와 배럴에도 구현하며 한층 정교한 마감을 완성했다.
블랙 폴리싱 공정을 평평한 표면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까다롭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리차드 밀의 워치메이킹 장인들은 이미 이 기술을 정교하게 다룰 수 있었다. 그러나 곡선 표면에 블랙 폴리싱을 적용하는 것은 업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도전이었다. RM 014의 모든 스틸 부품에서 드러나는 뛰어난 세공 기술은 리차드 밀 컬렉션을 넘어 하이엔드 워치메이킹 마감 공정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RM 014는 나노 섬유 소재의 베이스 플레이트, 투르비용 무브먼트, 그리고 파워 리저브, 토크 및 기능 인디케이터를 탑재하는 등 RM 002-V2와 동일한 핵심적 특성을 공유한다. 리차드 밀은 페리니 나비에서 영감을 받아 기존의 기능 셀렉터(N, W, H)를 이탈리아어로 새롭게 적용하여 C(Carica, 와인딩), N(Neutrale, 중립), L(Lancette, 시간 조정)로 표시하였다.
육안으로 보았을 때 RM 002와 RM 014를 뚜렷하게 구분 짓는 차이점은 무브먼트의 디테일한 요소와 인디케이터의 표현 방식이다. 특히 파워 리저브와 토크 인디케이터는 다이얼의 오른쪽, 크라운과 가까운 위치에 배치하여 내부 구조를 더욱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기술적 정교함과 디자인적 완성도를 동시에 구현했다.